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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생명, 나무의 마음
  • 편집국
  • 등록 2020-09-15 10: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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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다. 인간 이전에 존재하던 바이러스가 인간을 잠식하고 있다. 인간 공동체가 위협받고 있으며, 인간의 존재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녹아내리는 현실 앞에서 자못 의연함을 발휘하려고 해도 속수무책인 점에서 어쩔 수 없다. 인간이 지구상의 최상위 포식자라고 자임하던 터라 이 상황을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혹독하게도 인간의 존립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이제 숲에 가면 가을 풀벌레들이 울고, 나무들이 점차로 위축되는 것을 실감한다. 가을이 되었다. 가을은 잠자고 있던 뇌를 자극하여 무엇인가를 문득 생각하게 한다. 나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무는 마음이 있을까, 생명을 감지하기는 하나? 별로 어려운 질문이 아니다. 나무는 인간보다 현명하고 지혜로울 것이다. 스스로 낙엽을 떨구고, 싹을 틔우며,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여름의 무성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변화는 우주적인 리듬임이 분명하다. 그에 비하여 사람은 너무나 위태로운 존재이다. 실로 가엽기 짝이 없다. 나무는 생명을 지닌 존재이자 나무만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일본 궁 목수였던 니시오카 쓰네카츠는 자신의 저작을 통해 ‘1,300년 된 노송나무는 두 가지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전한다. 하나는 살아서 가지는 생명이다. 인간의 나이로는 어림짐작이 불가능한 나무의 생명이 경이롭기 그지없다. 다른 하나는 나무는 죽어서도 나무 부재로서의 생명을 가진다는 것이다. 호류지와 같은 절을 해체하고 수리할 때에 1,300년 된 목재로 기능하는 노송나무의 생명을 만나게 된다. 거기에 대패를 대면 노송나무의 향기가 코를 스친다고 말한다. 끈질기게 생명을 잇고 있는 나무의 존재를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나무는 오래도록 지구가 보여준 진화 역사의 소산이고, 지구의 생명 전체를 간직하고 있는 존재이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나무의 그것처럼 선명하지는 않다. 지구의 나이만큼 오래되지 않은 기억은 피폐하다. 선량하게 살지 못하고 우주를 인간 중심으로 해석하여 지구의 생명이나 전개에 반하는 일을 실제로 자행하였다. 인간 중심의 사고에 일정한 경고등이 들어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내적 성찰을 하고 외적 탐색을 할 시기가 되었다. 인간에게는 적응하는 일보다 양보하는 일이 긴요하여졌다. 사람이 만든 문화적 산물 모두를 이제 양보할 때가 되었다. 종교, 과학 등이 순기능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면모도 많다. 이는 사람이 모이는 공동체적 삶에 대한 깊이 있는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신이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인간의 의미를 성찰하고 다지던 시대의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신의 존재를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바꾸는 일도 필요하다. 자연의 경이를 외경스럽게 여기면서 나아가는 일이 신중하게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나무는 인간의 삶에 깊이 있게 들어와 있는데, 그간 우리의 성찰이나 모색이 부족한 탓에 그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였다. 상수리나무가 상수리 한 톨을 품에 안고 있는 것을 보고 몹시 정신을 잃었던 적이 있었다. 가슴시리도록 처연하게 이어지는 자연의 삶 앞에서 인간의 미미함을 청산하고 어울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코로나19가 발호한 시점에서 느낀 바이다. 이제 어느덧 나무들이 잎을 떨구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있다. 우리 인간도 새로운 잎을 틔우기 위한 처연한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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