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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학문, 대학의 사명
  • 편집국
  • 등록 2020-08-31 1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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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저절로 허물어지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세계의 정세와 정황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시대와 환경이 대학 생존에 많은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세계 전체에 밀어닥친 코비드-19의 발호는 자연적 재앙인데, 인간의 의지와 행위로 말미암아 더욱 혹독하게 확산 기세를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대학의 덩치로 이 같이 힘겨운 사태를 이겨낼 수 있을지 전혀 알 길이 없다. 대학 위축과 대학 기반 공멸의 현실화가 점점 더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대학은 지식을 창출하고 온갖 기술, 정보, 통신 등의 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가치 창조를 거듭하여 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사회를 선도하던 대학의 기능이 위축되고 있다. 전공 영역에서도 많은 차등과 불균형이 생기면서 대학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하지만 대학 본연의 임무가 바로 학문에 있다는 것은 대학의 존재 가치이자 사명이다. 때문에 학문의 창조력은 소중하게 활용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새로운 학문의 원동력을 각성하고 이를 실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길일 수 있다. 학문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 창조학문을 하지 않는 학문은 진정한 학문이라고 할 수 없다. 대학의 이념이나 기능의 핵심이 학문을 창조적으로 이끌기 위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상이 우리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앗아가더라도 학문의 본연적 자세를 견지하고 이를 거듭 창조하는 수고와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창조적 학문을 하고 학문의 전통 속에서 이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소중한 일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가장 인기 있고 앞서가던 학문, 기능과 직무 역량에만 충실한 학문만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잊고 있던 것들의 기반 위에서 다시 학문을 창조적으로 전개하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의 학문을 성찰해 보면 학문의 전통적 기반을 바탕으로 한 창조가 부족한 것을 실감하게 된다. 현재 우리 학문에서는 우리의 것, 우리의 전통을 기반으로 한 문화적 저력이 뼈저리리만큼 적다. 이것이 가장 커다란 문제이다. 온통 수입학문이 판을 치고, 돈이 되는 것이면 너나없이 달려들어 학문적 처세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입학이 우세하다고 판단하여 그 학문을 익히기에 급급하다. 반면에 전통을 표방하는 학문은 고사해도 무방하다는 착각에 빠져 전통학문을 지나치게 협착하고 있다. 재래의 것이 소중하다고 여기면서도 고지기를 자처하고 이러한 학문이 위대하다고 하는 견해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학문의 존망 자체도 위협받고 있다. 창조학문으로 나아가는 길은 인간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핵심이다. 인간의 위대함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서 살아야 한다는 근본적인 것을 기반으로 하는 학문이 되살아나야만 한다.

우리 학문사에서 19세기의 최한기(崔漢綺, 1803-1877)20세기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의 범례를 생각해 보자. 둘은 살아간 처지도 다르고, 기여한 학문의 업적도 다르다. 다만 이들은 전통에 철저하게 기반 하였다. 대략 70년의 상거에도 그들의 정신은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음이 확인된다. 자신의 전통을 자각하고 이어가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고 사라졌으나, 후대의 눈 밝은 사람들이 눈을 비비고 다시 볼 정도로 섬부하다.

최한기는 2천년에 걸친 동아시아 전래의 학문에 깊이 골몰하였다. 접하지 않은 학문이 없었으며, 원시유학, 노장저작, 불교의 학문도 두루 섭렵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서교의 학문, 세계 최고 수준의 학문 역시 모두 섭렵하였다. 결국 그는 이를 증명하는 학문의 쇄신을 전개하였으며, ‘추측신기라는 것의 학문 방법론을 완성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계왕개래(繼往開來, 과거를 잇고 미래를 여는 것)의 학문을 창조하였다. 다만 그의 학문은 잊혀 졌고, 이제야 겨우 기지개를 켜고 있는 형국이다. 호한한 그의 학문을 우리가 어떻게 소화하여 써 먹을 것인가 하는 일만 남았다.

한용운은 동학혁명의 와중에 전통적인 선불교에 심취하고 15세기 김시습의 학문과 저작에 깊이 공감하였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글은 옛글이나 뜻은 여전하게 산뜻하다고 하는 말을 하였다. 설악산 백담사 오세암에서 김시습의 저작을 읽고, 일제강점기에 민족을 일깨우는 학문을 신산하게 전개하였다. 그의 학문은 어디에도 빈틈이 없다. 시를 짓고 여러 저작을 남겼으나, 그의 살아 있는 혼과 정신에 압도당하고 만다. 낡은 학문인데도 새로운 시대를 각성시키는 학문으로 온전하게 발전한 것을 볼 수 있다. 한용운의 학문은 옛 것에 의존하였지만, 오히려 참신하고 시대를 각성하는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대학이 추구해야 하는 본연의 학문이 바로 이들과 같은 창조학문의 실천임을 절감해야만 한다. 한 사람의 가치가 위대한 것은 학문으로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생에 부유하는 학문으로 상업적 성취를 하는 것도 의미는 있겠지만 그것이 결코 바람직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인간의 가치는 실천과 완성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고행, 묵상, 청빈 등이 진정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이를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 한 시대를 저항하며 살아간 위대한 선학의 창조학문을 존중해야만 한다. 창조학문의 본령이 바로 대학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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