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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Before Christ) vs A.D.(Anno Domini) & B.C.(Before Corona) vs A.D.(After Disease)
  • 편집국
  • 등록 2020-05-25 10: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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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누리는 문명으 규격이 지나치게 서유럽중심적인 사고의 치중되었음을 이따금 깨닫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편년에 관련된 용어가 이를 말해준다. 그것이 지구에 인류가 출현하여 여러 가지 문명을 창조하였으나, 편년의 준거로 사용하는 B.C.(Before Christ) vs A.D.(Anno Domini)가 그 구체적인 편향성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과거 기원전 2천년기와 기원후 2천년기에 이룩한 인류의 혁신적 문명이 폭발적이고 인간의 발전적인 현상을 보여주었음을 거의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이제 새로운 질병의 위기 앞에 근본적인 반성과 통찰을 하는 것에 이르게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은 기원후 2천년기에 유별난 사건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을 통째로 뒤흔든 대사건이 될 조짐이 뚜렷하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질병의 창궐과 방역을 문제삼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가 이제는 국제적인 경제 위기와 마이너스의 경제 발전이 밀어닥쳐서 우리를 하염없이 나락으로 전락하게 하고 있다. 이 깊은 수렁의 끝판이 어디에 이를지 아무도 알 수 없고, 병의 원인을 두고 심각하게 미국과 중국의 강대국이 책임 공방을 벌이면서 WHO의 존립 기반을 흔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두 개의 강대국은 원색적인 비난을 하면서 비아냥거리고 있으니 심각한 현상이다.

이제 우리는 한 가지 분명한 준거를 얻었다. 나라가 지나치게 크고 강대국일수록 속수무책으로 당한다고 하는 엄연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대국은 운영하는데 힘을 많이 뺀다. 우리가 서구화와 세계화를 표방하면서 한참 뒤를 쫓던 곳에서 터진 일들은 거의 대책이 없는 것이고, 원칙적인 것이 부재함을 실감하게 한다. 게다가 더욱 우리를 근심스럽게 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을 다시금 의심하게 하는 일들이 만연하고 있다. 작은 나라를 알차게 경영하면서 그에 걸맞는 대책을 세울 수 있음이 여실하게 증명되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금욕이나 건실한 청교도적 삶을 표방하는 곳에서 출발한 코로나의 전파와 확진, 치료 등을 비롯하여, 동시에 욕망으로 넘쳐나는 이태원의 밤거리에 있는 클럽들에서 촉발된 바이러스의 전파와 질병의 확산은 인간의 잠재된 의식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속성인 선과 악의 경계면이 무엇인지 거듭 생각하게 한다. 우리를 건실하게 하는 윤리적 잣대도 이제 아주 모호해졌다.

바이러스를 막겠다고 헌신하는 의사와 간호사의 노력, 이를 원칙적인 차원에서 지켜내려는 방역당국이 있어서 우리는 안심과 우려를 근심하면서 하루하루 살고 있다. 우리의 고통을 분담하면서 물류의 과정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택배원들과 배달원의 갸륵한 희생이 우리를 알차게 살게 하고 있다. 버스기사나 전철기사의 노력 잊을 수 없다. 그들의 선은 기능적인 선은 아니다. 희생하고 노력하면서 이를 지켜내려는 선한 의지를 가상하게 생각한다.

이와 달리 바이러스 창궐과 확산에 관계없이 집단의 이익을 도모하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을 악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앞에 거론한 사람들의 희생과 달리 자신의 문제를 넘기는 점에서 이들의 존재는 분명하게 어긋나는 점이 있다. 사회 공공의 안전과 문제가 현재처럼 경각에 달려 있는 것은 우리로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면모가 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자신의 신앙심이나 욕망에 사로잡혀 본질을 놓치고 있으니 살펴할 일이다.

이제 시대적인 전체성을 주도하는 시대정신(Zeitgeist)과 같은 것도 갖추기 어렵게 되었다. 사소한 잘못으로 공공의 안녕을 해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점을 준엄하게 반성해야만 한다. 질병의 존재를 인식하고 이를 과학적으로 막아내는 것을 통해서 과학의 위대한 힘을 절감하면서 과학의 도구도 인간의 사소한 욕망이나 선택적인 일탈에 의해서 도저히 지켜낼 수 없는 참사를 빚어내는 점을 알게 되었다.

B.C.(Before Corona) vs A.D.(After Disease)라는 대립적인 시간의 항은 우리를 새로운 것으로 이끌고 있다. 몇 천년기의 대립항은 아니지만 새로운 시기를 제안하고 넘어서게 하는데 있어서 거의 절대적인 구실을 하게 된다. 소국면의 일회적인 사건으로 끝이 날지 새로운 천년기를 혁신하는 사건이 될지 아무 것도 예정된 것이 없다. 다만 인간의 근원적 성찰을 하는 계기가 되고 있음은 명확하다. 우리는 새로운 출발선에 있으면서 놀라운 발전을 하려는 노력은 자신의 성찰과 성실성에서 비롯된다. 영성을 가진 인간의 내면이 이제 소중한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각성하여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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