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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해 죽음을 사용할 것인가
  • 편집국
  • 등록 2020-03-16 09: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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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비상이다. 그런데 한번 냉정히 생각해 보자. 실제로 감염됐다 해도 그렇게 치사율이 높은 병도 아닌데, 왜 거의 모든 일상적 삶이 마비되는 난리가 벌어지는가?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인간에게 가장 확실한 게 죽음인데,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문제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게 목숨이지만, 결국 잃을 수밖에 없다. 죽으면 모든 걸 잃는다. 그래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최후의 무기가 죽음이다. 죽자고 대드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이 물음을 받으면 여러 생각이 떠오르지만, 선뜻 답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가?”로 물음을 바꾸면 답하기가 비교적 쉽다. 죽음은 인간의 어려운 실존적 문제들을 명쾌하게 정리하는 오컴의 면도날이다. 그래서 생긴 명언이 죽음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자연 속에서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 역설적이게도 생명의 에너지가 가장 충만하다. 그때 식물은 온 힘을 다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많이 맺는다. 그런 죽음의 카이로스(kairos)를 가장 멋지게 표현한 사람이 스티브 잡스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죽음이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 말했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닌 완성이다. 그 완성품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게 모든 사람의 화두다.

코로나19’ 사태로 죽은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하게 기억될 사람이 중국 우한 중앙병원 의사였던 리원량(李文亮)이다. 그의 유서가 인터넷에 떠돌았다. 그가 실제 쓴 게 아니라는 반론도 있지만, 명문장인 것만은 분명하다. 일부를 인용한다.

나는 갑니다. 훈계서 한 장 가지고!

1985~2020

동이 트지 않았지만 나는 갑니다!

가야 할 시간, 나루터는 아직 어둡고, 배웅하는 이 없이 눈가에 눈송이만 떨어집니다. 그립습니다. 눈송이가 눈시울을 적십니다. 삶은 참 좋지만 나는 갑니다. 나는 다시는 가족의 얼굴을 쓰다듬을 수 없습니다. 아이와 함께 우한 동호(東湖)로 봄나들이를 갈 수 없습니다. 이번 생애 태산보다 무겁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새털처럼 가볍기를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유일한 바람은 얼음과 눈이 녹은 뒤 세상 모든 이가 여전히 대지를 사랑하고 여전히 조국을 믿기를 희망합니다. 봄이 와 벼락이 칠 때 만일 누군가 나를 기념하려는 이가 있다면 나를 위해 작디작은 비석하나 세워주기 바랍니다! 우람할 필요 없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왔다 갔음을 증명해 줄 수만 있으면 됩니다. 이름과 성은 있었지만, 아는 것도 두려움도 없었다고.

내 묘지명은 한 마디로 충분합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해 말을 했습니다(他爲蒼生說過話).”

 

여기서 눈이 번쩍 뜨인 문장이 동아시아 역사의 아버지 사마천이 했던 말을 인용한 거다. 본래는 이렇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이는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人固有一死 或重于泰山 或輕于鴻毛 用之所趨異也/ 司馬遷 報任安書).” 이 말은 사마천이 궁형을 당하는 치욕을 무릅쓰면서까지 살아남아서 사기를 썼던 이유를 설명하는 동시에, 그가 쓴 열전이 태산보다 무겁게 죽음을 사용했던 사람들에 관한 기록임을 밝힌 거다.

개학과 함께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신입생들이 태어난다. 대학에서 탄생과 함께 졸업은 예정돼 있다. 졸업(卒業)의 졸은 죽음과 같은 뜻이다. 대학생활은 졸업이라는 대학에서의 죽음을 향해 나가는 과정이다. 신입생들이여, 출발점에서 한번 생각해 보라. 나는 졸업을 무엇을 위해 사용할건가? 그러면 대학생활을 어떻게 할지 답이 나온다. 이번 학기는 정말 어렵게 시작했다. 이젠 종강을 향해 달려야한다. 이번 학기 끝이 앞으로 내 인생에서 어떻게 사용될지 유념하고 새 학기를 힘차게 달리자.

                                                    
                                                                                    김기봉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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