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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테크노폴리스는 유토피아인가?
  • 편집국
  • 등록 2019-11-11 09:59:52
  • 수정 2019-11-11 1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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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 are citizens of a country called Technopolis  
that does not appear on a world map” (Winner, 1986)

 

  핸드폰이 죽었다 2년여를 나와 함께 일하고 여행하며, 잠자며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손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나의 모든 일상들을 기록하고 공유했는데, 새로운 폰을 바꿀 때 생기는 몇 가지 번거로움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완전히 꺼져버렸다. 이틀째, 불안해지고 모든 업무가 중단되고 있다. 가히 스마트폰이 가족보다 더 절대적이고 맹목적 사랑을 바치는 신흥종교라 할 만 하다. 그러나 새 스마트폰을 쥐는 순간, 그 간 경쟁적으로 집적된 최첨단 기술들에 힘입어, 나는 빛이 없는 곳에서도 사진을 찍고, 가상세계에서도 놀 수 있으며, 모르는 것도 없고, 아무리 낯선 장소도 못 갈 곳이 없으며, 하지 못하는 일도 없을 만큼 능력이 증강될 것이다. 이 스마트폰은 거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주는 마법의 주문과 지팡이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현대기술(Technology)이 만들어 내는 유례가 없는 세상 속에서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우리 행위의 결과를 매순간 확장시켜 가고 있다. 현대기술은 산업혁명이전의 전통적 기술(Technique)처럼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매개가 되는 도구적 성격을 지나 인간의 삶 전체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방식이 되고 있다. 현대기술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생각, 사회적 관계, 도덕과 정치에서의 한계, 산업생산, 사회구조, 경제시스템, 커뮤니케이션의 통로와 방법까지 규정하면서 우리 삶에 관여하고 관계 맺는다. 그리하여 우리 존재의 일상적 맥락에 엉켜들면서, 그 도구적 성질들이 우리의 인간됨 자체를 구성해 낸다.

그만큼 이 기술은 일방적이다. 또한 전지구적으로 어디서나, 누구나,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고 누구나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시된다. 기술의 발전방향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기술 자체가 자율적이 되었다. 이 같은 현대기술의 특징을 기술철학자 엘륄은 기술선택의 자동성, 자기확장성, 일원주의, 개별기술들의 필연적 결합, 보편성, 자율성 등으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만큼 누구는 수년전 친구들과 은밀하게 공유했던 불법적 사진들과 글이 살아나와 꼼짝없이 감옥에 가기도 하고 누구는 일상을 SNS에서 공개하다가 보이지 않는 댓글 공격에 목숨을 잃기도 하고 누구는 수년간 SNS에 올린 글들과 행동이 너무 달라 장관에서 낙마하기도 한다. 예상치 못하게 스마트폰과 공유하는 우리의 모든 행적들은 기록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기록들이 나도 모르게 족쇄가 된다.

이와 같이 현대기술이 이루어 내는 물질문명의 발달속도를 인간의 윤리적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고 사회와 이성의 통제 하에 두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이를 개발하고 사용하고 소모하는 주체이면서도 끊임없이 객체화되고 있다. 지난 100여 년간 엄청난 기술적 변화의 와중에서 공학자들은 더 빠른 자동차, 더 큰 용량의 컴퓨터 메모리칩, 좀 더 다양한 기능의 스마트폰을 개발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그러나 자신이 하는 연구개발의 맥락을 알고 있다 쳐도 계속 개발되고 있는 기술이 과연 얼마나 사회의 필요에 따른 것인지 혹은 미래에 어떤 다른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을지, 혹은 개별 기술들 간에 어떤 상호작용을 일으킬지 종합적으로 판단하거나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그 결과 지금의 지구는 기술이 이루어낸 발전과 혜택만큼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로 인한 다층적 피해를 대가로 치르고 있다. 또한 철저히 시스템화 되고 고도로 통제된 생산은 점차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있다. 기술의 적용과 이용은 전지구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지만 그로부터 발생한 이익은 극소수의 국가, 기업들과 사람들에게 편중되는 현상은 더 확대되고 있다. 또한 디지털화된 자동화로 새로운 일자리가 늘어가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단순업무 영역에 속한 직군부터 조용하게 사라지고 있다. AI는 전문직군도 조만간 대체해 내게 될 것이다. 그로부터 축출되는 인간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러한 테크노폴리스의 다양한 분야와 업역에서 일하게 될 우리들은 과연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우리가 사는 이 기술사회의 중층적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상황을 반전시킬 수 는 있는 것인가? 우리의 테크노폴리스는 유토피아가 될 것인가? 디스토피아가 될 것인가?

 

                                                                           류전희  (건축학과 )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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