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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반구정에서 여주 보통리 고택까지 경기도 대표 대학생의 자격은?
  • 편집국
  • 등록 2019-05-28 10:05:42
  • 수정 2019-05-28 1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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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서북쪽 끝, 파주 임진강 가에 반구정(伴鷗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갈매기와 함께 하는정자라는 뜻이다. 1960년대에 지어진 작은 정자니까 건물은 역사적 가치가 없다. 그러나 임진강을 바라보는 주변 경치가 기막히고, 강바람이 불어 여름에도 시원하고 겨울에는 몹시 춥다. 경내는 잘 정비돼 한번 산책할 만하다. 겉으로 보이는 하드웨어는 여기까지다다. 그러나 유래를 살펴보면 역사 문화적 무게는 훨씬 무겁다.

 반구정은 18년 영의정을 지내며 조선의 기틀을 다진 황희 정승이 은퇴후 만년을 보낸 정자다. 조선 후기의 명필 미수 허목 선생, 독립운동가 김창숙 선생이 자신의 묵적()을 남겼다. 안쪽에 서 있는 황 정승 동상의 건립 추진위원장은 옛날 대국어학자 이숭녕 선생이고, 동상의 글씨는 현대의 명필 김충현 선생이다. 이만하면 하루치 인문학 공부로 충분하고 넘친다. 조금만 힘을 내면 윤관 장군 묘소, 율곡 이이의 흔적인 자운서원, 화석정도 들를 수 있다.

 반대로 경기도 동남쪽 끝 여주 보통리로 가면 김영구 고택이 나온다. 고종때 이조판서를 지낸 조석우의 99칸 짜리 집이다. 집마당에 해시계가 있다는 대목으로 해설 끝! 이거 좀 허전하다. 뒤져보니 조석우는 할아버지부터 아버지를 거쳐 본인까지 3대가 나란히 * 과거 급제한 * 당대 명필에 * 관찰사와 판서를 두루 거친 명문 중의 명문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시험 잘 보고 눈치 잘 보고 말 잘 듣는, 좋게 말하면 모범생, 나쁘게 말하면 아첨꾼 느낌이 난다.

 그 집안은 달랐다. 할아버지는 3사라 해서 임금을 견제하던 세 기관의 관원을 모두 규합해 대궐 앞에 엎드려 아니 되옵니다하는, 이른바 복합상소(伏閤上疏)를 두 차례나 주도한 강골이었단다. 아버지와 본인도 할 말은 하는 직언파였고, 조성환이란 자손은 독립운동으로 훈장도 받은 뼈대 있는 집안이다. 여주는 세종대왕 영릉도 있고, 명성황후의 탄생지기도 하다.

 우리 경기대학은 경기도 대표 대학을 지향한다. 그러러면 우리 경기대학생들은 경기도를 더 잘 알아야 한다. 파주 임진각과 판문점, 수원 삼성전자와 파주 LG 필립스, 화성 현대차 등 대기업만 알면 된다고 생각하지 마라. 경기도의 ()’가 원래 서울 근처의 땅을 의미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경기도의 역사, 경기도의 인물, 경기도의 문화를 알아야 한다. 수원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외국인에게 경기도를 설명할 수 있어야 경기도 대표 대학이요 대표 대학생이다. 외지인들에게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인터넷에서 뒤져 얻은 단편적인 지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책을 읽고 친구들과 토론하고 함께 답사하면서,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자신의 피부로 직접 공기를 쐬야 한다. 다니는 사이 접하게 되는 많은 사람들이 경기대학생들의 진지한 자세를 알게 될 것이다. 물론 학점 따느라 취업 준비하느라 바쁜 대학 생활 중에 짬을 내어 경기도를 따로 공부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글로벌 시대에 경기도 로칼 공부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는 반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위상이 국제적으로 높아가면서 외국인들도 한국, 한국적인 것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도포 입고 갓쓴 노인들이 다니는,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던 한국의 마을들이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영국 여왕과 왕자가 두 차례나 다녀가는 세상이다. 폐해가 자심해 아예 기억에서 지웠으면 좋겠다 싶던 한국의 서원도 9개나 무더기로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 직전이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경기도 고택과 서원이 귀중한 인류 문화유산일 수 있다. 경기도의 역사와 인물과 문화에 대한 지식이, 영어 단어 하나 더 외고 수학 공식 하나 더 외는 것보다 유학이나 취업, 국제 업무에 더 도움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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