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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곳곳에서 느껴지는 대륙의 매운맛! ‘마라(麻辣)’ 열풍!!
  • 편집국
  • 등록 2019-05-28 09:58:33
  • 수정 2019-05-28 1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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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꼬치엔 칭다오의 시대는 가고 이제 마라(麻辣)’의 시대가 대한민국 대학가를 강타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대림동에서나 볼 수 있었던 마라탕 음식점이 매운 맛을 선호하는 젊은층이 많이 찾으면서 도심 번화가와 대학가에 속속 들어서고 있다. 이에 역세권은 아니어도 마세권(마라 음식점 근처)에 살아서 행복하다”, “혈중 마라 농도가 떨어졌어. 마지막으로 마라탕을 먹은 지 무려 48시간이나 지났다고와 같은 표현이 수시로 소셜미디어에 등장한다.

  빅데이터 기반 맛집 추천 서비스 식신에 따르면 마라탕 검색량이 최근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마라탕 검색량은 35955건으로, 2년 전인 2017년 같은 기간 검색량 대비 11배 이상 증가했다. 마라샹궈 검색량은 같은 기간 12배 늘었고, 마라롱샤도 8배 증가했다. 2017년만 해도 더 높은 검색량을 보였던 훠궈를 2018년 이후 마라탕이 역전해 현재는 격차를 더 벌이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인기 있는 마라 요리의 TOP 3는 쓰촨식 훠궈(火鍋), 마라탕(麻辣湯) 그리고 마라샹궈(麻辣香鍋). 훠궈는 중국식 샤브샤브이고, 마라샹궈는 마라 양념에 갖가지 재료를 볶아낸 음식이다. 마라탕은 훠궈의 홍탕과 비슷한 국물 요리인데, 훠궈는 식탁에서 끓여가며 먹고 마라탕은 식당 주방에서 끓여낸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자면 영화 범죄도시에서 장첸이 먹던 마라롱샤(麻辣龍蝦)’가 있다. 마라롱샤는 민물가재를 마라 소스에 전골로 요리한 음식이다.

  그렇다면 마라란 무엇인가? 마라(麻辣)는 중국의 4대 요리 중 하나이며 우리에게 사천요리로 알려진 쓰촨(四川) 음식의 핵심이다. 마늘, 후추, 생강, 화자오(花椒), 고추 등이 쓰촨 맛의 기본이며, 그중 화자오와 고추의 맛이 곧 마라다. ‘마라혀가 얼얼하여 뻣뻣할 정도로 맵다는 뜻이다. 매운맛인 ()’는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것과 동일한 매운맛으로, 고추의 익숙한 매운맛이 . ‘()’는 엄밀히 말해서 맛이라기보다는 물리적인 자극에 더 가까우며, 후추, 산초와 비슷하게 생긴 화자오에서 비롯된다. 화자오는 레몬과 같은 종류의 새콤한 향과 맛을 갖고 있으면서 독특한 전기 자극을 전달하는 향신료다. 고추의 캡사이신이 뜨거운 온도로 느껴지는 매운맛을 내는 데 비해 화자오의 산쇼올은 마취주사를 맞은 듯 멍한 마비감을 준다.

  마라열풍의 대표주자인 마라탕도 쓰촨(四川)에서 발생한 음식이다. 중국요리는 넓은 영토로 인해 지역마다 맛의 특징이 뚜렷하게 구분되는데, 대체로 동쪽 요리는 맵고(東辣), 서쪽 요리는 시며(西酸), 남쪽 요리는 달고(南甛), 북쪽 요리는 짜다(北鹹)’는 특징을 갖고 있다. 색으로 구분하자면 남쪽은 흰색이나 푸른색 등 재료의 원색을 그대로 살리는 편이고, 북쪽은 간장으로 맛을 내어 대체로 검으며, 동쪽의 음식은 고추를 많이 써서 붉은색을 띠고, 서쪽 음식은 동쪽과 같이 매운 맛을 내면서 약간 신맛을 띤다고 할 수 있다. 쓰촨성 인근의 후난(湖南), 구이저우(貴州)성 지역에도 각기 고유한 매운 음식이 잘 발달돼 있는데 이 지역의 덥고 습한 더위를 이겨내는 데는 매운 음식이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후난 사람은 매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구이저우 사람은 매워도 겁내지 않지만, 쓰촨 사람은 맵지 않을까 두려워한다(湖南人不怕辣贵州人辣不怕四川人怕不辣)”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지역 사람들은 매운 것을 좋아한다.

  이러한 음식의 영향 때문인지, 이들 출신 중에서도 후난(湖南)인은 고추처럼 화끈하고 호전적인 기질로 유명하다. 후난인은 청말 태평천국의 난부터 신해혁명, 항일 전쟁까지 가장 선두에서 싸워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연유로 후난인이 없으면 군대를 만들 수 없다(天下無湘不成軍)”는 말도 생겨났다. 후난인의 이러한 기질 때문에 후난 출신의 여성들을 라메이쯔(辣妹子)’라고 일컫는다. 매운 고추처럼 화끈하고 강단 있다는 말이다. 후난 출신의 마오쩌둥은 고추를 좋아하는 사람은 못 해낼 일이 없다. 홍군(紅軍)에 몸담은 이들 중에 고추를 싫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면서 인민해방군에 후난 요리의 매운맛을 장려했다고도 한다.

  최근 마라가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소셜미디어와 먹방(먹는 방송)’을 중심으로 색다르고 극단적인 음식을 경험하고 인증하는 문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둘째, 매운 음식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현대인의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기 불황 시 자극적인 맛에 대한 소비가 늘어나는 현상과도 연관 지을 수 있다. 또한 원하는 재료를 골라 무게대로 계산하면 바로 조리해 주는 방식으로 혼자서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지금의 마라탕 열풍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 중국 동포와 중국 유학생의 증가, 중국과의 활발한 학생 교류가 중국인들의 현지 음식 문화를 자연스럽게 한국 대중에게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대림동 일대에 정착한 중국 동포들이 훠궈, 마라탕 등을 전파했다면, 중국 유학생과 중국 대학에서 교환학생, 유학 경험이 있는 한국인 대학생들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대중적으로 확산, 보급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제 마라는 전문 프랜차이즈 식당의 성장과 함께 라면, 치킨, 편의점 간편식으로 빠르게 확장하는 중이며 당분간 마라의 인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심각한 청년실업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대학생들에게 색다른 매운맛의 마라 음식이 한편으로는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앞으로 다가올 무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소확행(小確幸)의 도구가 되고, 한편으로는 강단 있게 삶을 개척해 나가기 위한 멘탈 강화제가 되길 바란다. 그럼 함께 마세권으로 혈중 마라 농도높이러 가보자


윤유정(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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