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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기에 대한 단상
  • 편집국
  • 등록 2018-11-20 09:35:48
  • 수정 2018-11-20 09:3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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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주변은 흔히 말하는 ‘디지털 노마드’들로 넘쳐난다. 영화도 모바일상에서 스트리밍으로 감상하는게 자연스러워진 시대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는 파일 다운로드를 넘어 더욱 간편해진 1회성 영화관람 방식으로, 핸드폰이나 태블릿 등 모바일 매체상에서 광고나 드라마와 별반 다르지 않게 영화를 소비시킨다. 영화는 극장가서 보는 것으로 알았던 세대는 디지털 모바일 환경에 적응해야 한지 오래고 이미 적응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이제 극장에서 영화보기는 상대적으로 이벤트 성격을 많이 띠게 됐다.

 

 사실 은판필름에 각인된 ‘움직이는 영상 (moving image)’으로서 영화는 모든 동영상의 시조다. 1895년 12월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파리의 ‘그랑 카페’에서 1분 미만의 단편들을 상영한 것이 공식적인 영화 탄생의 순간으로 기록됐다. 그 때는 영화라는 새로운 예술이 태동하려는 시점이어서 그것의 본질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영화의 아버지’ 자리를 두고 세계적으로 벌어진 치열한 경쟁이기도 했다. 미국의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도 동일한 시기에 영화보는 장치를 만들었기에, 뤼미에르 형제와 에디슨 중 누구에게 ‘영화의 아버지’ 자리를 내주느냐가 관건이었다. 그 당시 영화를 정의한 기준들을 되짚어보자. 첫째 움직이는 영상의 관람자가 다수인가, 둘째 영사과정을 거치는가, 셋째 유료상영인가. 이 세 가지가 제 7 예술로 등극하게 될, 그러면서 문화산업이기도한 영화를 정의하는데 결정적 이었다. 그리고 입장료를 지불한 여러 사람 앞에서 움직이는 이미지들을 ‘시네마토그라프’ 로 스크린에 투사한 뤼미에르 형제가 에디슨을 제치고 영화의 창조자로 공식화됐다. 에디슨의 ‘키네토그라프’는 기계에 뚫린 구멍으로 개개인이 영상을 관람하는 장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 영화를 정의하는데 있어서 관건은 움직이는 영상 그 자체라기보다 그것을 보는 환경이었다. 당시 기준을 따른다면 유료 개봉 극장만이 영화가 상영되는 온전한 환경이자 플랫폼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시대는 변해도 너무 변했고, 무엇보다 영상을 필름에 새기는 촬영 자체가 희귀해진 실정이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디지털 영화와 더불어 영화관람의 플랫폼이 급격히 진화 중이다. 그럼에도 주 창작자인 영화감독 대부분이 여전히 극장을 전제로 매 숏의 미장센을 구상하고 촬영하여 편집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예술가로서 그들에게 최우선은 대형 스크린을 통한 관객과의 소통이다. 그런면에서 영화 탄생국 프랑스의 경우, 극장상영이 여타 TV, 블루레이(DVD), 스트리밍 등의 플랫폼보다 법적으로 우선시되는 것은 영화의 예술성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라 하겠다. 창작자들이 구상했던 바대로 대형 스크린상에 투사된 이미지를 집중해서 보는 것은 영화를 예술로서 존중하는 최고의 행위인 것이다.

 

혼자 집에서 혹은 전철에서 산만하게 보는 것보다 여럿이 불꺼진 극장에서 만끽하기에 적격인 장르로 공포영화를 꼽을 수 있다. 최근 공포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1978년 작 <할로윈>의 오리지널 후속편을 자처하며 2018년 판 <할로윈>이 개봉했다. 호러 명가 블룸하우스가 제작하고 <할로윈>(1978)의 팬인 데이빗 고든 그린이 감독했으며 원조 감독 존 카 펜터가 음악을 담당했다. 원조 배우 제이미 리 커티스도 등장한다. 전설이 된 70년대 카펜터의 <할로윈>을 나중에라도 극장에서 경험했다면 이 매력덩어리 후속편을 극장 외의 다른 플랫폼에서 소비할 생각은 여간해선 들지 않으리라. 두 번째, 세 번째라면 몰라도, 최초의 관람을 위해서는 일단 극장으로 달려가지 않을까? 이런 씨네필의 감성조차 시대에 뒤처진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함께 본 이들과 즉석에서’ 아마추어 평론가가 되어 별점 매기는 즐거움이라도, 오래도록 극장에서 영화보기로 이어지길 희망해본다.

 

 

이수원 (글로벌어문학부 프랑스어문전공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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