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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별, 누구의 잘못도 아닌
  • 박현일
  • 등록 2018-10-08 09:2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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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은영

출판사 : 문학동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관계를 어려워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추측만 할 뿐,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눈을 가린 채 길을 걷는 것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어림짐작하며 함께 걷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렇다보니 관계에서 상처받거나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은 흔하다. 그리고 그 상황의 연속으로 누군가와 멀어진 사이가 된 경험을 떠올리며 우리는 후회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최은영 작가의 단편집 ‘내게 무해한 사람’에는 미숙함으로 인해 멀어진 관계를 회상하는 소설들이 수록돼있다. 단편집의 첫 이야기인 ‘그 여름’은 이경이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나 사랑을 했지만 대학 시절 헤어진 애인 수이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떠올리는 이야기다. 이경과 수이는 서로를 아꼈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대하는 법을 서로 알지 못해 멀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경이 나가는 모임에 따라간 수이는 자신이 대학을 가지 않았음을 모르고 학번을 물어보는 타인들의 질문에 화를 내며 이경을 힘들게 한다. 그러한 수이의 모습에 곤란해했던 이경은 은지라는 다른 사람에게 잠시 끌렸던 것을 수이를 아끼는 마음이 사라진 것이라 착각하며 그녀를 떠나보낸다.

 

 다른 수록작품인 ‘모래로 지은 집’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PC통신을 통해 친해진 △나비 △공무 모래가 보낸 시간에 대해 다룬다. 셋은 처음 만난 시점부터 적잖은 시간 동안 친분을 유지했지만, 공무의 군입대와 나비와 모래의 오해 등 여러 일을 통해 균열이 생긴다. 공무는 모래를 좋아하지만 둘은 이어지지 않고 모래는 자신의 생활에 많은 제약을 두는 애인을 만난다. 나비는 공무의 마음을 몰라주는 모래와, 애인 때문에 힘든 모래를 못 본 척하는 공무를 모두 못마땅해 한다. 이처럼 셋은 PC통신이라는 우연 덕분에 만났지만 가고자 하는 방향이 달라 다시 각자 가 된다. 십여 년 후 나비는 이를 기억하며 씁쓸해 한다.

 

 두 이야기의 화자는 각각 사랑과 우정이라는 소중했던 관계가 멎어가는 과정을 회상한다. 하지만 헤어졌다는 게 중요하지는 않다. 작품의 화자이자 관계의 끝을 회상하는 역할인 이경과 나비는 지나온 과거를 슬퍼하지만 스스로 를 탓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그를 완벽하게 알지 못한다. 이는 이별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잘못은 아니다.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만나는 이상, 멀어지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관계에 미숙한 것은 흔히 있는 일이고 계속되므로 잘못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사람과 틀어졌다고 해서 그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고 괴로워하면,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 타인과의 사이를 잘 다루지 못해서 힘들 때 이 책을 넘겨보는 것은 어떨까? 마침 책의 띠지에는 ‘미숙했던 지난날의 작은 모서리를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읽다 보면 미숙함을 책망하는 대신 위로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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