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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특집] 신문사의 60년 발자취를 돌아보다
  • 임진우 기자
  • 등록 2018-09-18 11:3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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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판에서 시작해 A4형태에 이르기까지

1호 <경대학보 창간> 

 경대학보라는 제목으로 4면의 창간호가 발행됐다. 대판으로 월간 출판했던 경대학보 는 △교수논문과 사설 △시사평론 △교내외의 주요 뉴스 △문화 관련 기사를 기재해 대학 신문의 형태를 갖췄다. 초기의 신문은 대부분이 한자로 작성돼 읽기 힘들다는 특징이 있으며 현재와 다르게 표기준칙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다.



64호 <학생들이 함께하는 신문>

 경대문예 학술 현상대모집을 주관해 △시 △소설 △희곡 등의 문학 부문과 학술 논문 및 생활수기의 모집을 받았다. 이전까지는 논문이 많이 게재돼 딱딱한 면모를 지녔다면 현상대 모집으로 인해 재학생들이 참여하는 신문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218, 219 합본호 <최초의 컬러신문>

 경대학보 창간 21년만에 처음으로 컬러판 신문이 발간됐다. 당시 8면으로 구성된 학보는 여전히 한자가 사용되고 있지만 창간호에 비해 한글의 빈도 수가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동아제약 △해태유업 △유한킴벌리 등 지금과 다르게 외부 광고가 기재됐다.

336호 <언론사의 추세를 따르다>

  당시 언론사들의 추세에 따라 가로편집을 시도 했다. 336호에서는 1면의 기사를 제외한 모든 면을 가로로 편집했고 이에 따라 경대학보의 제목도 가로로 쓰기 시작했다.

400호 <역사를 이어주는 축쇄판>

 400호를 맞아 창간호에서 400호까지의 학보를 묶은 경대학보 축소인쇄판이 1권에서 3권까지 발간됐다. 신문에서 대부분의 한자가 사라졌으며 404호부터는 기사에서 한자를 찾아볼 수 없 게 됐다.

422호 <경찰에 의한 발행 중지>

 2면에 실릴 예정이었던 북한 바로 알기 두 번째 시리즈 ‘주체사상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논문이 경찰에 의해 발행 중지됐다. 이에 기자들은 철야농성 과 결의대회를 가지는 등의 노력을 했 고 결국 제목을 바꿔 449호에 다시 기재됐다.

465호 <다함께 만들어가는 경대학보>

 학원자주화투쟁으로 인해 주간교수가 해임됐으며 경대학보가 89년 2학기 때 약 6개월간 발행이 정지됐다. 그러나 이후 △교수 △교직원 △동문 △학생들의 성금으로 2면의 경대학보가 5회 발간될 수 있었다.

507호 <학교와의 대립>

 사학과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한 교수채용이 이뤄졌고 이에 관한 기사가 게재됐다. 그러나 본교에서는 △사학과 △신규교수임용 △전체학생회 성명서 공고 △부정교수 복직기사 등의 이유로 인쇄를 중지시켰다. 이에 △광고의 백지화 △만화·만평수정 △4면 사진 교체의 합의를 거쳐 일주일 후 발행될 수 있었다.

701호 <백지신문 발행>

 701호의 표지는 의문을 갖게 하는 하얀 배경으로 발행됐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로비명단 및 술값 영수 증에 관한 기사가 학교 당국에 의해 삭제됐다’고 알리고 있다. 당시 본교의 비리를 폭로한다는 이유로 주간교수가 발행을 거부했고 경대학보에서는 그에 대한 대처로 백지신문을 내놓은 것이다.


756호 <또 한 번의 백지신문>

 

 손종국 전 총장의 해외출장, 초호화 저택 거주구매 등으로 사용된 판공비1)에 의문이 제기됐다. 본교 총장의 판공비가 서울대 총장 보다 10배 많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과 더불어 당시 총장이 200여 평의 초호화 저택의 거주중인 것으로 밝혀졌으나 본교 측의 반대로 판공비 사설 지면이 백지로 출판됐다.

 

1) 공무를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

 

838호 <경기대신문의 탄생>

 

 기존의 경대학보라는 이름에서 경기대신문으로 이름을 변경하는 것과 함께 B3로 판형을 변경했다. 또한 △창간호 월간 △78년 격주간 △81년 순간2) △83년 주간 발행에서 838호부터 격주 발행으로 바뀌는 등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며 현재와 같은 체제를 지니게 됐다.

 

2) 열흘에 한 번

 

 

871호 <현재의 판형을 갖다>

 

 858호 당시 판형이 A3에서 바뀐 것에 이어 경기대 신문의 판형을 A4크기로 변경했다. 이는 판 형이 작아지면 구독률이 증가한다는 설문조사를 받아들여 만든 신문형태이다.

 

1000호 <1000번째 신문>

 

 총 70쪽의 분량으로 신문이 출판됐다. 1000호 특집에 맞춰 △ 신문방송사 소개 △본교축사 △ 경기대를 듣다 등의 기념지면으로 구성됐으며 본교 관련인물들 이 각계각층에서 참여해 신문이 만들어졌다. △건강증진센터의 간호사 △미화원 △전산지원팀장의 축사를 비롯해 역대 국장들의 축사와 타 학교 편집국장들의 축사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신문제작에 참여했다.

 

1021호 <새로운 시작>

 

 가장 최근에 발행된 경기대신문이다. 기본적으로 △ 대학 △사회 △문화지면과 더불어 우리학교 동아리 지면과 오늘의 대학가 지면이 신설됐다. 더불어 웹팀을 신설해 SNS에 카드뉴스를 배포하며 경기대뉴스의 구독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계속해서 시도 중에 있다.

 


 

 

 

덧붙이는 글

△백지지면 △발행 중지 △주간교수 해임까지 신문사의 역사에는 여러 난관이 찾아왔지만 이를 극복하고 어느덧 60주년을 맞이했다. 컬러로 출판되고 현재의 A4판형에 이르면서 만들어 낸 경기대신문, 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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