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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와 폐지 사이, 시각차 큰 도서정가제
  • 박현일
  • 등록 2018-05-23 11:25:29
  • 수정 2018-05-23 11: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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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 막는 악법인가 출판업계 생존법인가

 

 지난 1일, 전자책과 중고책 등의 판매를 규제하는 ‘건전한 출판유통발전을 위한 자율협약’이 시행됐다. 국내에서는 협약 시행 전후로 해당 협약에 대한 반대와 함께 도서정가제의 폐지를 요구하는 여론이 나타나는 상황이다. 그러나 협약을 체결한 출판사와 서점 등의 출판 관련 업계에서는 도서정가제의 유지 및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도서정가제와 협약 간의 관계와 더불어 해당 내용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 지난 16일 영업 중인 한 서점. 본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계가 없습니다

 

 도서정가제, 어떤 제도인가


 도서정가제는 도서가격 할인 경쟁 과열을 막기 위해 제정된 법안으로, 정부가 도서 판매시 최대 할인율을 제한하는 제도다. 다시 말해 출판사가 정해 놓은 책의 정가에 대한 할인을 제한 또는 금지하는 장치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도서정가제가 처음 도입된 시기는 ‘출판 및 인쇄 진흥법(현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이 등장했던 지난 2003년이다. 첫 도입 당시에는 도서 출간 후 18개월이 경과할 시 제한 없이 할인이 가능했고, △실용서 △참고서 △학습지 등의 서적은 할인율 제한의 예외로 둬 독자들이 크게 체감하지 못했다. 과거에는 비교적 존재감이 크지 않았던 도서정가제가 보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시점은 2014년이다. 그해 4월, 모든 서적의 할인율을 10%로 제한함과 동시에 할인과 경품 및 포인트 적립의 총합이 정가의 15%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도서정가제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해당 개정안은 당해 11월 21일부터 시행됐으며, 참고서 등 기존에 예외로 뒀던 서적들도 모두 법안 적용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기존과 차이를 보였다. 이에 개정안 시행 직전에는 △YES24 △알라딘 △인터파크도서 등의 국내 인터넷서점들이 시행 직전 할인율을 최대 90%까지 설정하거나 적립금으로 책값에 준하는 금액을 돌려주는 등의 파격적 할인행사를 열기도 했다.

 인터넷서점 YES24의 조사에 따르면, 개정안 시행 시점인 지난 2014년 11월 21일부터 그해 12월 16일까지 26일 동안의 도서 판매량은 전해인 2013년의 같은 기간에 비해 17.8% 감소했다. 개정 1년 후인 2015년에는 통계청이 집계하는 ‘1가구당 서적 구입비’가 전해보다 13.9%p 떨어졌다. 수치상으로 볼 때 도서정가제 개정 이후의 출판물 소비는 이전보다 위축됐다.

 

 개정 후 4년, 또 한 번의 강화?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1일부터 기존 도서정가제의 제한을 강화하는 ‘건전한 출판유통발전을 위한 자율협약(이하 협약)’이 시행됐다. 해당 협약은 △출판사 단체 △온‧오프라인 서점 △소비자 단체 간의 자율협약이기 때문에 도서정가제의 법률적 내용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협약의 내용에 ‘건전한 유통질서로 도서정가제가 보완됩니다’라는 조항이 명시됐다는 점에서 성격은 도서정가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 세칙을 살펴보면 △제휴카드마일리지 등 3자 제공 할인 15% 이내 제한 △전자책 대여기간 90일 이내로 한정 △책 출간 후 6개월간 중고책 판매 금지 등 이미 위축된 도서구매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내용이 주가 됨을 알 수 있다. 때문에 도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사실상 기존의 도서정가제를 강화시키는 협약이 아니냐’는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협약으로 인해 가장 큰 변화를 맞은 건 전자책 시장이다. 기존의 도서정가제에는 전자책의 가격에 관한 규제 내용이 적어 ‘50년간 대여’와 같은 방식으로 사실상 제도를 피할 수 있는 할인이 이뤄지곤 했다. 그러나 최근의 협약으로 인해 전자책의 대여 기간이 90일로 제한되면서 이전과 같은 판매는 할 수 없게 됐다. 또한 협약 시행 이후 서점과 제휴한 카드사의 카드나 서점의 마일리지가 있어도 정가의 15% 이상 할인 받을 수 없게 됐다. 이밖에 협약은 중고도서 시장에도 칼을 댔다. 이번 협약의 내용에 따르면 출간 6개월이 지나지 않은 책은 중고도서로서의 판매 자체가 금지된다. 이에 따라 △판매자의 재정적 부담 △구매자의 선택권 제한 △중고서점 위축의 위기가 동시에 찾아왔다는 부정적 시각이 적지 않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본교 구현우(사회복지·2) 군은 “전 자책 대여 기간 제한 등 협약이 가져온 변화로 인해 독자들의 도서 이용이 불편해질 것”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계속되는 수치 악화와 ‘폐지’ 여론

 도서정가제 개정 당시 국회가 밝힌 개정 취지 중에는 ‘동네서점 활성화’가 있었다. 그러나 개정안 시행 이후 이 취지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수치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시행 2년차였던 2016년, KB국민카드의 자사 고객 서점 업종 이용 현황 공개에 따르면 2014년의 도서정가제 개정 이후 '대형서점을 제외한 오프라인 서점', 즉 동네서점에서의 도서 구매금액은 이전 2년보다 17억원(0.6%p) 감소했다. 이러한 상황에 따라 동네서점 수의 감소세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5월 국세청의 조사에 따르면 서점 사업자는 전년 같은 시기에 비해 0.48%p 줄어든 7893명으로 집계됐다. 개정 후 3년이 지났지만 동네서점이 사라지는 현상은 반전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도서정가제 폐지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은 편이다. 도서정가제 개정 시행 3년을 맞은 지난해 11월, 문학신문의 도서정가제 찬반 조사에서 설문 대상자의 절반이 넘는 58.2%가 도서정가제 폐지를 원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더불어 협약 시행 직전이었던 지난달 29일에는 ‘독서를 막는 도서정가제 폐지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이 등록됐다. 지난 14일 자정을 기준으로 해당 청원에 동의를 표한 참여자의 수는 32,304명이다.

 

 출판 관련 업계, 유지 및 강화 원해

 

 이렇듯 부정적 영향이 적지 않지만, 도서정가제의 완전한 정착과 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 또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4년 11월 개정된 도서정가제는 시행 당시 ‘한시적 시행’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한시적 시행의 기간은 3년 후인 지난해 11월까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업계와 서점업계는 합의를 통해 이를 2020년 11월까지 연장했다. 이러한 상황은 일각에서 도서정가제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출판 관련 업계는 도서정가제 개정안 시행의 연장 을 통해 도서정가제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에 따르면 출판업계 종사자 1,000명 중 67.6%는 도서정가제 유지·강화에 긍정적이었다.

  출판 관련 업계가 도서정가제의 유지 및 강화에 찬성하는 이유는 출 판시장의 악화되는 불황에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2017 국 민독서실태조사’는 지난해의 성인 1인당 독서율이 지난 2015년에 비 해 5.4% 감소했다고 밝혔고, 이러한 독서율의 하향세는 매년 이어지 고 있다. 독서율이 낮아진다는 것은 출판업계의 매출 또한 감소함을 의미한다. 도서정가제는 할인율 제한을 통해 도서 판매 이익금을 보장 한다. 따라서 출판업계 입장에서는 책을 찾는 사람이 줄어들어 재정적 문제가 심화되는 이상 도서정가제의 유지와 강화가 생존의 방편이 될 수 있다.

 도서정가제의 의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도서시장에서 필수적 업계인 출판사들의 경우 도서정가제를 찬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 비자들의 책값 부담과 불만은 커져만 가고, 개정의 목적은 지켜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많은 도서정가제가 독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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