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소통과 남용 사이, 두 얼굴의 국민청원
  • 박현일
  • 등록 2018-03-20 10:00:44
기사수정
  • 부적절한 내용의 청원 막을 개선안 필요

 

 민주국가에서 정부와 국민의 소통은 필수적이다. 새 정부는 지난해 8월 17일, 소통을 위한 방식으로 ‘국민청원 및 제안(이하 국민청원)’을 도입했다. 이 정책은 뜨거운 반응과 함께 실용적 제도라는 긍정적 평가를 얻었다. 그러나 일각에서 몇몇 문제점들이 드러남에 따라 ‘양날의 검’으로 비춰지고 있다.

 

 

▲  ‘국민청원 및 제안’게시판에서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들이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국민청원, 어떻게 시작됐나

 

 지난해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출범 100일을 맞이해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소통 광장’이라는 메뉴를 신설했다. 이는 취임 당시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힌 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변화로 보인다. 해당 메뉴에는 △토론방 △국민신문고 △인재추천 △효자동사진관 △국민청원 및 제안이라는 5가지 항목이 포함됐고, 최근 들어 그 중 하나인 국민청원 제 도가 이슈로 떠올랐다. 이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아이디어를 냈다고 알려졌는데, 지난 2011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 통령 시절에 마련된 백악관 홈페이지의 ‘We the people’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국민청원의 청원 가능 항목은 국가적 문제부터 생활 관련 주제까지 다양하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네이버 △ 페이스북 △트위터 계정을 통해 로그인 후 게시물 작성을 통해 청원이 가능하다. 특정 청원에 대해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의 ‘동의’가 모일 경우, 청와대는 이후 30일 이내에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각 부처 장관 △대통령 수석비서관 △특별보좌관)를 통해 답변해야 한다.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3월 13일 오후 9시 기준 총 138,736건의 청원이 등록돼 있다.

 

 유의미한 소통 창구 된 국민청원


 국민청원이 정책 도입 취지에 걸맞게 정부의 유의미한 답변 제공 계기가 되거나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조국 민정수석이 답변한 ‘임신중절 합법화 청원’이다. 조 수석은 답변 당시 일관적으로 낙태죄 처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며, “현행법이 남성과 국가의 책임은 빼고 여성에게만 부담을 지운다”는 언급으로 법의 불공정성을 지적했다. 또한 2010년 이후 중단된 행정부 차원의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올해부터 재개하겠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물론 행 정부인 청와대가 형법을 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청원에 대한 답변을 통해 낙태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는 부정적 인식을 바꾸고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하겠다는 공식적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이밖에도 ‘전기·생활용품안전관리법(이하 전안법) 폐지 및 수정 청원’과 관련해 채희봉 산업정책비서관은 “△의류 △가죽제품 △장신구 등 안전의 우려가 낮은 제품에 대해 안정성 시험·인증을 면제하는 전안법 개정안의 통과가 지연됐지만, 청와대의 국회 설득과 40만 명이 넘는 청원 동의에 힘입어 지난해 12월 통과·공포됐다”고 밝혔다. 해당 사례는 국민청원의 힘이 개정안 통과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따라서 국민청원이 현안 해결에 실제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국민들은 국민청원 제도 도입 이전까지 문제가 되는 특정 사안에 대해 절차에 따른 처리만을 기다려야 했다. 이러한 국민들의 입장에서 국민청원은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정부와 국민의 소통 창구가 돼 주고 있다. 본교 김찬영(바이오융합·1) 군은 국민청원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청원을 통해 정부의 답을 받을 수 있는 질문이 됨에 따라 국민들 역시 사회문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남용되는 국민청원, 드러나는 부작용


 그러나 국민청원과 관련한 문제 또한 꾸준히 드러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등록 조건이나 제한이 없어 제도 도입 취지에 맞지 않는 청원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부적절한 사안에 대한 청원 △과도한 의견 표출 △특정 개인에 대한 공격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문제는 홈페이지에 청원 가능 항목을 지키지 않은 게시물도 등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지난달 21일 등록된 청원 중에는 자신이 플레이하는 게임 캐릭터의 성능을 저하시킨 디렉터에게 사퇴를 요구하는 내용이 있었다. 이는 공중파 뉴스에 부정적 사례로 소개되는 등 많은 이들로부터 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또한 지난 1월 26일에는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특정 아이돌 그룹을 공연자로 초청하라’는 과한 의견표출이 등록되기도 했다. 단 9명이 동의한 청원이지만, 이를 언론기사나 블로그 등을 통해 접한 네티즌들은 ‘국민청원이 단순한 인터넷 커뮤니티인가’ 등의 의견으로 비판했다.

 

 특정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이 청원으로 등록되는 경우도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경기 당시 동료 선수인 노선영보다 한참을 앞서 결승선을 통과해 논란을 일으킨 김보름·박지우에 대한 국가대표 자격 박탈 청원이 바로 그것이다. 이 청원은 613,050명의 동의를 얻어 답변 대상이 됐다. 그러나 이는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이 주제인 게시글로, 국민청원으로 제시할 사안에 적합하지 않다는 논란을 일으켰다. 심지어 특정 선수의 자격박탈 문제는 애초에 답변이 불가한 내용이었다. 따라서 청와대 김홍수 교육문화비서관은 청원의 다른 주제 인 대한빙상경기연맹 개혁을 중심으로만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이밖에 포털사이트와 SNS 계정을 사용하는 ‘소셜 로그인’도 문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1인이 보유한 각각 다른 SNS 계정을 통해 중복 청원·동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청와대는 기존에 지원했던 카카오톡 로그인을 ‘일부 이용자의 부적절한 로그인 정황이 발견돼 중지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청원 제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국민청원을 개인 민원 해소의 창구 혹은 인터넷 커뮤니티 정도의 시각으로 보는 청원자들의 태도 때문에 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본교 심윤서(컴퓨터 공학·1) 양 역시 “쓸데없는 청원이 너무 많이 올라와 도입 이유를 모르겠다”며 비판적인 의견을 밝혔다.

 

 성숙한 소통 위한 개선 필요


 그렇다면 국민청원이 위와 같은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개선이 필요할까. 미국 백악관의 ‘We the people’은 자체 사이트 회원 가입을 통해서만 청원할 수 있어 중복 청원 문제가 발생할 수 없다. 또한 답할 수 없는 청원을 막기 위해 법정 사안 또는 주 정부 관할 사항은 ‘예외 조항’으로 둬 답변을 거절한다. 중앙정부에서 답변할 수 있는 사안만 등록이 가능한 것이다. 부적절한 내용의 청원이 문제를 발생시키는 경우를 막기 위해서 위와 같은 조항을 신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정치권 역시 국민청원 제도의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용호 국회의원은 지난달 22일, 본인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국민청원을 폐쇄하라”는 다소 강한 어조의 논평을 게시했고 해당 논평에 부분실명제와 20만 명 동의시 해당 청원 작성자 아이디 일부 공개 등의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국민청원은 정부의 소통 중시를 보여주는 상징적 조치이며, 실제 긍정적 영향이 있었다. 그러나 부적합한 내용의 청원 및 중복 로그인 등의 문제가 악화되며 반대의견이 눈에 띄게 늘어난 상황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많은 부작용이 드러난 국민청원 제도에 대한 분명한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TAG
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