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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고영민'
  • 편집국
  • 등록 2018-03-02 10:45:49
  • 수정 2018-03-02 10:4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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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으로부터 7년 전 경기대신문에 마침 당시에 은퇴를 앞두고 있던 양준혁과 관련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다시 원고 청탁을 받고 보니 이승엽이 마침 은퇴를 한 일이 있었다. 야구팬으로서 이승엽과 관련된 추억이 없을 수 없어 이승엽 이야기를 쓸까 하다가 라이온스팬도 아닌데 7년에 한번 정도 오는 귀한 기회를 그렇게 써버릴 수는 없을 것 같아 이번엔 프로야구 원년 이래 꾸준히 응원하고 있는 베어스의 한 은퇴 선수, 고영민에 대해 쓸까 한다.

 2002년부터 2016년까지 베어스 한 팀에서만 선수 생활을 한 고영민은 홈런타자도 아니면서 삼진은 많고, 삼진이 많은가 하면 볼넷도 많으면서(몸에 맞는 볼도 많았다), 그렇다고 정교한 타격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그런 와중에 득점은 리그 수위권이고, 타점도 웬만한 팀 3~4번 타자 정도가 되는 도무지 경향성이라고는 없는 스탯을 자랑한 전성기를 보냈다. 실제로 경기를 봐도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어떤 타석에서는 말도 안 되는 공에 배트를 마구 휘둘러대기도 하다가, 어떤 타석에서는 저럴 수 있나 싶을 정도의 참을성을 보이는 한편, 도저히 칠 수 없을 것 같은 볼도 딱딱 때려내기도 했다. 그럴 땐 공이 와서 배트에 맞아주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해서 고변태 선생이라고도 불렀다. 그런 만큼 타격폼도 그야말로 변태적이어서 배트를 휘두르는 순간에 하체가 들썩하였다. 양준혁의 만세타법이니 뭐니 하는 비정형적 타격도 결국에는 하체가 안정된 상태에서 배트에 공을 맞히는 순간 힘을 모은다는 대원칙에서는 합의가 되는데, 고영민의 타격은 일단 하체의 고정 혹은 안정과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2011년인가 고영민이 스프링캠프에서 발을 땅에 붙이고 공을 치고 있다는 소식에 흥분한 적도 있으니 하여간 어지간했다. 덕분에 이익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보통의 2루수 보다 몇 미터 이상 뒤에서 수비를 하기도 했다.

 

 게다가 구체적인 변태플레이는 이루 말할 수도 없었다. 가령 선두타자 초구 몸에 맞는 볼(홈런이 아니다)이라든가(공격에서든 수비에서든 유난히 공에 많이 맞기도 했다), 각종의 상상할 수도 없는 본인은 주자플레이라고 하는 주루플레이, 헤드퍼스트 슬라이딩도 아닌 1루 슬라이딩, 2009년 와이번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코를 훌쩍훌쩍 먹어가면서 친 홈런 등이 모두 그런 예이다. 2WBC 멕시코와의 경기에서는 그 큰 펫코파크에서 홈런을 쳐서 현지 캐스터를 깜짝 놀라게 하더니(홈런 칠 몸으로 보이지 않았을 테니까), 다음 타석에서는 수비가 뒤로 물러 나 있는 걸 보고 기습번트로 1루로 나갔다가, 후속타자 볼넷인지로 2루에 진루한 후 3루 도루를 해서 현지 캐스터뿐만 아니라 멕시코팀을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 고영민은 3년 남짓의 짧은 전성기를 누리고는 부상 등이 있었겠지만 바깥에서는 이유를 도통 알 수 없는 부진에 빠진다. 베어스가 워낙 야수들을 잘 키워내는 팀인 탓에 후배 선수들에게 주전 자리도 내주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2015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예전의 고영민스러운 플레이로 팀의 승리에 기여하며 팬들에게 울컥한 추억을 선사하였다. 그 경기에서 이겨 팀도 14년 만에 우승을 했다. 그러나 2016년에는 다시 거의 경기에 나오지 못하고 드디어는 아주아주 조용히 은퇴를 하고 말았다. 모든 인생이 끊임없이 화려한 것만은 아니다. 고생스럽게 오른 정상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하염없이 내리막길을 걷게 되기도 한다. 그래도 고영민은 아주 잘 해줬다. 적어도 내게는 고영민이 보여준 야구가 다른 누가 보여준 야구 보다 즐거운 것이었다. 7년 전에 양준혁 글을 쓰면서 인민군 초급장교 비슷하게 생겼다고 한 거 뒤늦게나마 사과한다. 선수 생활도 열심히 잘 했으니 코치로서도 훌륭하길 바란다. 그리고 오래오래 야구하는 곳에 머무르길 바란다. 은퇴와 새 출발을 조금 늦게, 진심으로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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